국가 간 기술 패권 경쟁이 가속화됨에 따라 국내 회사에서 재직하던 임직원들이 퇴사 후 외국회사로 이직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임직원들을 통한 국내 기술의 해외 유출에 대한 우려가 계속하여 제기되고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 및 산업기술보호법은 법 위반 행위를 한 행위자뿐만 아니라 행위자가 소속된 법인에게도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양벌규정을 두고 있어, 이직 과정에서 기술을 유출한 임직원 외에 해당 임직원이 이직한 경쟁 회사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임직원들이 국내 회사가 아닌 외국 회사로 이직하는 경우에는 외국 회사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법원에 재판권이 있는지 여부가 문제되어 왔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영업비밀 및 산업기술 유출 사건에서 외국 법인 소속 직원들이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 그 외국 법인에도 양벌규정이 적용되어 우리 법원에 형사 재판권이 있다고 판시한 바 있어 이에 대해 소개해 드립니다(대법원 2025. 8. 14. 선고 2022도8664 판결).
피해 회사는 LED를 생산하는 국내 법인이며, 피고인 회사는 대만 법인입니다. 두 회사는 모두 LED 생산 업체로 자동차용 LED 시장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데, 피해 회사에서 피고인 회사로 이직한 종업원 3인(이하 “A”, “B”, “C”)을 통해 피해 회사의 영업비밀·기술이 유출되어 피고인 회사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종업원 A는 피해 회사를 퇴사하면서 경쟁 업체 이직 후 동종 업무에 사용할 의도로 피해 회사의 영업비밀·기술이 저장된 USB 저장장치를 반납하지 않고 무단으로 반출하였고, 이후 출국하여 피고인 회사에 입사한 뒤 대만 내에서 해당 파일을 사용하여 새로운 파일을 작성하고, 피고인 회사 임직원들에게 공유하였습니다. 한편 종업원 A는 피고인 회사로 이직한 뒤 피해 회사에 재직 중이던 종업원 B와 C를 피고인 회사로 유인하였고, 이들은 피고인 회사를 위해 피해 회사의 영업비밀·기술을 누설·취득하기로 공모하였으며, 그에 따라 종업원 B와 C는 재직 중이던 피고인 회사의 영업비밀·기술을 열람 촬영하고 이를 대만 내에서 종업원 A에게 누설하였습니다.
검사는 직접 기술을 유출한 종업원들에 대해 공소를 제기하는 것과 별도로, 피고인 회사에도 양벌규정을 적용해 산업기술보호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죄로 기소하였습니다. 피고인 회사는 “외국 법인인 피고인 회사의 외국에서의 과실 행위(종업원에 대한 주의·감독 의무를 다하지 못한 과실)에 대해 대한민국의 재판권이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만, 대법원은 이러한 피고인 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종업원들 사이의 영업비밀 등 누설·취득 등에 대한 의사 합치, 이에 따른 산업기술 및 영업비밀 열람·촬영과 영업비밀 무단 유출 행위가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이루어진 이상, 비록 종업원들의 산업기술 유출·공개와 영업비밀 사용·누설·취득 등 행위가 대한민국 영역 밖에서 이루어졌더라도, 종업원들이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죄를 범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대법원은 종업원들의 위반 행위는 양벌규정이 적용되는 피고인 회사의 범죄 구성요건적 행위의 일부라고 할 수 있으므로, 종업원들이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죄를 범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이상 피고인 회사도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죄를 범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므로 피고인 회사에 대한 대한민국의 재판권이 인정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종래 외국 법인을 피고인으로 기소한 사례는 있었지만 재판권에 대한 판단기준을 명확히 설시한 판결은 없었는데, 본 판결은 양벌규정이 적용되는 외국 법인에 대한 재판권 판단기준을 처음 제시한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본 판결의 취지에 따르면 외국 법인이라 해도 그 종업원들이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죄를 범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는 외국 법인 또한 양벌규정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내 기업으로서는 국외로의 기술 유출 시 종업원들에 대한 법적 조치 이외에 이들이 이직한 외국 회사에 대해서도 형사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을 적극 고려할 수 있을 것이며, 외국 회사에 대한 형사사건이 관련 민·형사사건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본 판결은 영업비밀 및 기술 유출 사건에 국한되지 않고, 양벌규정이 있는 다른 법률 관련 사건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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