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자재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공사대금 조정에 관한 분쟁이 빈번해지고 있으며, 그 중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1]의 적용범위가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관련하여, 최근 물가변동에 의한 공사대금의 조정 가능성을 배제하는 특약(이하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효력을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를 근거로 명시적으로 부인한 부산고등법원 2023. 11. 29. 선고 2023나50434 판결(이하 “부산고법 판결”)이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부산고법 판결은 언론(링크)에서도 보도되며 화제가 되고 있는데, 그 주요 내용 및 법적인 측면에서 고려할 사항을 아래와 같이 설명 드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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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법 판결의 주요 내용
부산고법 판결에서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효력은 다음과 같은 사실관계 하에서 다투어졌습니다.
도급인은 수급인의 계약이행보증서 및 선급금보증서 미제출 등 계약조건 위반을 이유로 도급계약의 해제를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수급인은 각 보증서의 발급에 앞서, 도급인의 사유로 착공이 약 8개월 가량 늦춰지는 사이에 원자재의 가격이 급등하였고 수급인이 도급금액의 증액을 정당하게 요청하였으므로 물가변동 배제특약에도 불구하고 도급인의 물가상승에 따른 도급금액 조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관하여 제1심은 도급계약 특약사항의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근거로 도급인에게 물가상승으로 인한 도급금액 조정의무는 없다고 판단하였으나, 항소심인 부산고법 판결은 아래와 같은 사유를 들어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효력을 부정하며 도급인의 도급금액 조정의무를 인정하였습니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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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건의 도급계약에 첨부된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 일반조건 제20조 제1항은, 계약체결 후 일정한 기간이 경과한 후 산출내역서에 포함되어 있는 품목의 가격 변동이 잔여공사 금액의 일정한 비율 이상이면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정은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의 취지를 고려하여 도급금액 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경우를 특정한 규정임. 따라서, 해당 건의 도급계약 특약조건상의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들어 어떠한 경우에도 물가상승 등으로 인한 경제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증액, 변경을 부정할 수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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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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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급인의 귀책사유 없이 도급인 측의 사정 및 요청으로 착공이 8개월 이상 늦춰졌는데 그 사이에 원자재인 철근 가격이 2배 가량 상승하였음. 이러한 사정에도 계약금액의 조정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수급인에게 현저히 불공정한 경우에 해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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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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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법 판결의 시사점
대법원은 과거 발주자가 국가나 공기업인 공공건설계약에서도 국가가 사경제의 주체로서 체결하는 사법상 계약은 사적 자치와 계약 자유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전제 하에 개별 계약의 구체적 특성 및 경제적 변동에 따른 위험의 합리적 분배 등을 고려하여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합의할 수 있고, 나아가 사적 자치와 계약 자유의 원칙상 그러한 계약 내용이나 조치의 효력을 함부로 부인할 것은 아니라고 판시함으로써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유효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17. 12. 21. 선고 2012다74076 전원합의체 판결)[2].
그런데, 부산고법 판결은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의 규정을 근거로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무효라고 판단하였으므로 일견 위 대법원 판결과 배치되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산고법 판결은 수급인의 귀책사유 없이 도급인의 요청으로 착공이 8개월간 연기되었으며, 그 8개월 동안 원자재 가격이 대폭 인상된 다소 특수한 사실관계 하에서는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판단한 것이므로 부산고법 판결을 완전히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해당 건의 도급계약의 전체적인 계약조건의 체계와 내용을 해석의 근거로 삼았으므로 계약서의 내용도 중요합니다.
특히 최근 하급심 판결들 중에서는 부산고법 판결과 달리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사례들도 아래와 같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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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7. 21. 선고 2021가합539204, 2023가합65332 판결: 해당 사안에서 수급인은 도급인의 요청에 의해 연장된 공사기간에 대한 물가상승에 따른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도급계약에 규정된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 등에 의하여 무효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수급인의 주장을 배척하며,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① 수급인에게 현저히 부당한 불이익을 주었다는 점을 인정할 사정이 없으며, ② 오히려 계약시 견적가의 2배 이상의 물가상승이 발생하는 등의 경우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는 단서조항을 둠으로써 수급인의 이익을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보호하고 있다는 등의 사정을 들어 유효하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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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고등법원 2022. 11. 24. 선고 2021나26674 판결: 해당 사안에서 수급인은 공사도급계약상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에 따라 무효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수급인의 주장을 배척하며, ① 입찰시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이 불가하다는 점을 수급인에게 명시적으로 밝혔고, 수급인도 이를 인식하고 감안하여 공사비를 산정한 후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 점 및 ②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도급인이 수급인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여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유효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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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위 최근 하급심 판결들을 고려하면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효력을 일률적으로 무효라고 하거나 어떠한 경우에도 유효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고, 도급계약 체결의 경위와 내용, 물가상승의 규모, 공사기간 연장 여부 및 그 책임이 어느 당사자에게 있는지 등 제반 사실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될 것입니다. 당초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이 수급인에게 현저히 불공정한 경우에 해당할 경우 구체적 타당성을 살펴 계약내용을 일부 무효로 할 수 있다는 내용이므로 개별 사안에서의 구체적 계약내용과 진행 경위가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향후 개별 프로젝트별로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협상하거나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서 잠재적인 공사비 분쟁이 예견되는 경우 사전에 상세한 자문을 받으시어 보다 신중히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겠다고 생각됩니다.
[1]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은 비교적 최근인 2013년 법개정으로 추가된 조항으로, 건설공사 도급계약의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로서, 계약체결 이후 설계변경, 경제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아니하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제1호) 그 부분에 한정하여 해당 내용은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2] 대상 판결은 2007. 4. 16. 부터 2008. 8. 29. 까지의 물가변동에 따른 지수조정률이 27.94%에 이르는 사안에 대한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