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 항만 갑문 보수공사 중 시공사 소속 근로자가 추락하여 사망한 사고와 관련하여, 법원은 2023. 6. 7.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로 기소된 인천항만공사(이하 “회사”)의 대표자(사장)에 대하여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하며 법정구속한 바 있는데(인천지방법원 2023. 6. 7. 선고 2022고단1878 판결, 이하 “제1심 판결”), 저희 사무소는 항소심에서 회사 및 대표자를 변호하여 2023. 9. 22.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회사 및 대표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판결을 이끌어 냈습니다(인천지방법원 2023. 9. 22. 선고 2023노2261 판결, 이하 “대상 판결”).
대상 판결은 회사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하며, 대표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위반의 고의가 인정되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산업안전보건법위반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는데, 이는 최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에 따라 도입된 ‘건설공사발주자’ 개념의 범위와 관련하여 법원이 구체적 해석 기준을 밝힌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하에서는 대상 판결의 주요 내용 및 시사점에 대하여 설명 드리겠습니다.
대상 판결의 주요 내용
대상 판결은 항만을 관리·운영하는 회사(원청)가 발주청으로서 발주한, 항만 내 특정 갑문의 운영을 8개월 가량 중단한 채 이루어지는 대규모 갑문 보수공사에 있어, 공사 시공사인 A 회사 소속 근로자가 갑문 상부에서 안전대를 부착하지 않은 채 윈치를 이용하여 H빔 등을 내리는 작업을 진행하던 중 윈치 프레임이 넘어지면서 H빔이 갑문 아래로 떨어지자, 그에 연결된 줄을 잡고 있던 근로자도 함께 갑문 하부로 추락하여 사망한 사고와 관련하여,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로 기소된 원청 회사의 대표자(사장)에게 징역 1년 6월(실형), 원청 회사(법인)에 벌금 1억 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대표자 및 회사에 대하여 모두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한편,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와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된 A 회사(하청) 소속 현장소장에 대해서는, 유족 측과 합의한 사정, 사건의 발생경위 등을 고려하여 징역 1년(실형)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년(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습니다.
대상 판결에서는 회사(원청)가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의 지위에서 안전대 부착설비를 설치할 의무, 중량물 취급 작업계획서를 작성할 의무 등이 있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는데, 법원은 ① 관련 법리 및 제반 사실관계에 비추어 회사는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할 뿐 ‘도급인’에 해당하지 않고, ② 사고가 발생한 작업 방식은 회사로서 알거나 알 수 있었던 방식도 아닌 점 등에 비추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점에 관한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대상 판결의 시사점
대상 판결은 아래와 같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판결로 이해됩니다.
(1) |
대상 판결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발주자’와 ‘도급인’의 의미에 관하여 규범적 관점에서의 해석 원칙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
대상 판결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건설공사발주자’ 해당 여부를 규범적 관점에서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할 지위에 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원심판결의 해석을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상 판결은 건설공사발주자가 도급인의 안전 및 보건조치의무와 별개로 재해 예방 등을 위한 건설공사발주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였다는 점만으로 ‘도급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건설공사발주자가 산업재해 예방 조치를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도급인 책임을 인정할 경우, 공사 안전관리에 덜 관여할수록 도급인의 지위에서 멀어지게 되어 관계 법령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지 않게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판시하였습니다.
또한 대상 판결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의 취지가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응하는 것이므로, 건설공사발주자와 도급인의 구별에 있어서도 건설공사발주자가 해당 공사를 스스로 시공할 ‘자격’이나 ‘능력’이 있음에도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책임 회피를 위해 임의로 발주자로서의 외관을 야기한 것인지, 해당 공사에 있어 발주자의 지배 하에 특수한 위험요소가 있어 시공사 등이 실질적으로 안전 및 보건조치를 이행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이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 건설공사발주자 해당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대상 판결은 이러한 법리 아래 원청이 사업 기획, 공정률 점검 등과 같이 본래 건설공사 발주계약에서 발주자의 영역에 속하는 것을 행하였다고 하여 원청이 시공을 할 수 있었다거나 시공에 참여했다고 볼 수는 없으며, 건설산업기본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에서 건설공사발주자의 안전관리에 대한 책임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으므로 회사가 해당 공사의 안전에 관한 사항을 점검하고 관리해 온 것을 두고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대상 판결은 그동안 다양한 사건에서 계속 쟁점이 되어온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건설공사발주자와 도급인의 구별에 관하여, 실제로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했는지 여부가 아닌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할 지위에 있는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는 기존의 법리를 재차 강조하면서도,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관리할 지위에 있었는지 여부의 판단에 관하여 보다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판결로 평가됩니다.
(2) |
대상 판결은 사고 발생 작업 방식이 피고인들로서는 알거나 알 수 있었던 방식이 아닌 점 등에 근거하여 피고인들의 산업안전보건법위반에 대한 ‘고의’를 부정하였습니다. |
대상 판결은 산업안전보건법위반에 대한 고의는, 사업주가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도록 지시하거나, 그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하는 등 그 위반행위가 사업주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성립된다는 원칙(대법원 2008. 8. 11. 선고 2007도7987 판결 등)을 재확인하였습니다.
특히, 대상 판결은 안전보호구의 지급, 정기적 교육 실시 및 사고 현장에서 확인된 제반 사실관계 등에 비추어 회사 측에서 재해자가 사고 발생 작업과 같이 이례적인 방식으로 중량물 하역작업을 할 것임을 알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여 회사 대표에게 산업안전보건법위반의 미필적 고의마저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대상 판결이, 회사(원청)에 보고된 적 없는 이례적인 방식의 작업에 의하여 사고가 발생한 경우에 있어 원청 대표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위반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은 기존 대법원 및 하급심 판례들과 같은 취지로서, 산업안전보건법위반의 고의에 대한 이와 같은 법원의 해석은 향후 후속 판결에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3) |
대상 판결에 대한 상고심 판단 및 향후 유사 사건에서의 법원의 후속 판단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
대상 판결에 대해서는 검사가 상고를 하여 대법원의 판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만약 건설공사발주자 및 도급인의 구별 기준에 대한 대상 판결의 법리가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다면, 기존에 건설공사발주자 인정 여부에 관하여 다소 엄격한 입장을 견지해 왔던 노동청의 실무에도 변화가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제정·시행 이후 이 법에 따른 ‘실질적 지배·운영·관리 책임’ 유무의 해석과 관련해서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건설공사발주자 판단 기준이 하나의 참고가 될 수 있으므로, 향후 다양한 공사를 발주하는 원청 입장에서 어느 범위까지 안전관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보다 명확해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대상 판결에 대한 상고심 판단 및 향후 유사 사건에서의 법원의 후속 판단을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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