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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중재 친화적 태도를 재확인하는 판결 선고(대법원 2025. 1. 23. 선고 2024다243172 판결)

2025.07.14

대법원은 두 가지 언어(국문 및 영문)로 함께 작성되었으나 국‧영문 사이의 내용이 서로 다른 관할조항을 해석함에 있어, ‘Arbitration(중재)’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다른 흠결 및 내용상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해당 관할조항이 유효한 전속적 중재합의임을 인정하고 제기된 소를 각하하였습니다(대법원 2025. 1. 23. 선고 2024다243172 판결, 이하 “본건 판결”).
 

1.

사건의 배경

해당 사건에서 원고는 외국 회사인 피고를 상대로 공급계약상 채무불이행으로 인해 계약이 해제되었음을 근거로 원상회복을 위한 금전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공급계약상 전속적 중재합의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소가 부적법하여 각하되어야 한다는 중재항변을 하였습니다.

2심(원심)법원은 문제 된 관할조항이 선택적 중재합의에 해당하여 유효한 전속적 중재합의가 아니라고 판단하였으나, 대법원은 원심과 달리 이를 유효한 전속적 중재합의에 해당한다고 최종 판단하였습니다.
 

2.

2심법원의 판단

문제 된 공급계약서는 영문과 국문이 병기되어 있었으나 어느 언어가 계약상 우선하는지는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았고, 다음과 같은 관할조항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이하 “본건 관할조항”).
 

8. 통제 법률(Arbitration)
본 합의는 한국 법률이나 국제사법재판중재위원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All disputes, controversies, Claims or Difference arising out of, or in relation to this agreement, or a breath
[1] hereof, shall be finally settled by Korean Law or in accordance with the Commercial Arbitration committee of International Commercial Law.


2심법원은 본건 관할조항의 “영문본과 국문본을 대등한 지위에 놓고 양자가 서로 최대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석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당사자들이 본건 관할조항을 통해 분쟁해결수단으로 중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법에 따른 재판도 선택적으로 수용한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우선 2심법원은 (1) 본건 관할조항의 영문 제목 “Arbitration”과 영문 본문 중 “settled (…) in accordance with the Commercial Arbitration committee of International Commercial Law” 부분과 그에 상응하는 국문 본문 중 “국제사법재판중재위원회의 통제”를 받도록 규정한 부분은 중재를 분쟁해결수단으로 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2) 본건 관할조항의 영문 본문 중 “settled by Korean Law” 및 그에 상응하는 국문 본문 중 “한국 법률 (…) 의 통제”를 받도록 하는 부분은 한국법에 따른 분쟁 해결(settle) 수단까지 수용한 것이고, 달리 분쟁 해결의 수단으로써 재판 청구를 배제한다는 문구를 포함하지 않은 이상, 여기에는 한국법에 따른 재판 청구(소송)이 분쟁해결수단으로 포함되는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한국법에 따른 소송을 분쟁해결수단’으로 수용한 부분은 본건 관할조항의 국문 및 영문 문구 모두에서 “or(이나)”라는 선택적 접속사를 통해 ‘중재를 분쟁해결수단’으로 수용한 부분과 연결되어 규정되어 있으므로, 본건 관할조항은 소송과 중재를 선택적으로 정한 선택적 중재조항에 해당하여 유효한 전속적 중재합의가 아니라고 판단하였습니다.
 

3.

대법원의 판단

2심과 달리 대법원은 본건 관할조항이 전속적 중재합의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두 언어로 작성된 계약상 특정 언어가 우선한다는 조항이 없는 상황에서 본건 관할조항의 영문본과 국문본을 대등한 지위에 놓고 해석해야 한다는 2심법원의 접근법에는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계약서에 중재에 관한 조항을 별도로 둔 사정은 분쟁을 중재에 의하여 해결하겠다는 당사자들의 의사를 추단하는 유력한 자료가 될 수 있다”라고 판시하며, “중재조항의 일부 문언이 모호하고 상충되거나, 존재하지 않는 중재기관이나 중재인을 지정하는 등 중재조항에 다소간의 흠결이 있다고 하여 그러한 사정만으로 유효한 중재합의가 아니라고 쉽게 단정하여서는 안된다”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당사자들의 중재 의사를 확인하는 데 있어 본건 관할조항은 그 영문 표제가 “Arbitration(중재)“이고, 국문본과 영문본 모두 ‘중재기관에 의한 통제/해결’을 규정함으로써 중재절차를 통해 분쟁을 해결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본건 관할조항상 “한국 법률의 통제(by Korean Law)“를 받는 것으로 규정한 부분은 준거법에 관한 합의일 뿐 한국법에 따른 분쟁해결수단을 수용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아가, 대법원은 당사자가 중재조항을 두면서 재판절차(소송)를 분쟁해결수단에서 명시적으로 배제하지 않았다고 하여 재판절차(소송)를 분쟁해결수단으로 합의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없다고 판시하며, 본건 관할조항이 유효한 중재조항임을 확인하였습니다.

본건 판결은 국제거래에서 종종 사용되는 국‧영문 병기 계약서의 관할 및 준거법 조항을 정확히 해석하기 위해서는, 달리 계약상 언어의 우선순위를 정한 것이 아닌 한, 국문과 영문의 문구를 함께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한 사례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이처럼 국‧영문 병기 계약서 관할조항의 국문과 영문 내용이 다른 경우에는 분쟁의 본안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전에 관할에 대한 절차적 다툼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사전적으로 관할조항에 대한 확인과 검토를 통한 대비가 필요하겠으며, 이미 관할에 대한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는 계약 문구 및 제반 사정 등을 충분히 검토 및 고려한 해석을 통해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대법원은 계약서에 중재에 관한 조항을 포함시킨 것으로부터 (소송 등 법원 절차가 아닌) 중재에 의하여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당사자들의 의사를 추단할 수 있다고 보면서, 이 경우 재판절차(소송)를 분쟁해결수단에서 배제한다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사자들의 유효한 중재 의사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중재 의사는 중재조항의 일부 흠결 및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유효하게 인정된다는 점을 재확인 함으로써, 본건 판결은 중재 친화적인 관점에서 중재합의의 유효성을 폭넓게 인정해 오던 대법원의 기존 입장을 한층 더 발전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한국법상 관할조항(중재조항 포함)을 해석하게 되는 경우, 원칙적으로 국문 및/또는 영문 문구상 ‘Arbitration(중재)’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는지가 중재합의의 유효성 판단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국제거래에서 계약을 체결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법원의 경향 및 법리를 고려하여 관할 및 준거법 조항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거치는 것이 추후 분쟁 시 관할 및 준거법에 대한 다툼의 소지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1] 법원은 이를 “breach”의 오기로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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