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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판단
2심과 달리 대법원은 본건 관할조항이 전속적 중재합의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두 언어로 작성된 계약상 특정 언어가 우선한다는 조항이 없는 상황에서 본건 관할조항의 영문본과 국문본을 대등한 지위에 놓고 해석해야 한다는 2심법원의 접근법에는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계약서에 중재에 관한 조항을 별도로 둔 사정은 분쟁을 중재에 의하여 해결하겠다는 당사자들의 의사를 추단하는 유력한 자료가 될 수 있다”라고 판시하며, “중재조항의 일부 문언이 모호하고 상충되거나, 존재하지 않는 중재기관이나 중재인을 지정하는 등 중재조항에 다소간의 흠결이 있다고 하여 그러한 사정만으로 유효한 중재합의가 아니라고 쉽게 단정하여서는 안된다”라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당사자들의 중재 의사를 확인하는 데 있어 본건 관할조항은 그 영문 표제가 “Arbitration(중재)“이고, 국문본과 영문본 모두 ‘중재기관에 의한 통제/해결’을 규정함으로써 중재절차를 통해 분쟁을 해결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본건 관할조항상 “한국 법률의 통제(by Korean Law)“를 받는 것으로 규정한 부분은 준거법에 관한 합의일 뿐 한국법에 따른 분쟁해결수단을 수용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아가, 대법원은 당사자가 중재조항을 두면서 재판절차(소송)를 분쟁해결수단에서 명시적으로 배제하지 않았다고 하여 재판절차(소송)를 분쟁해결수단으로 합의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없다고 판시하며, 본건 관할조항이 유효한 중재조항임을 확인하였습니다.
본건 판결은 국제거래에서 종종 사용되는 국‧영문 병기 계약서의 관할 및 준거법 조항을 정확히 해석하기 위해서는, 달리 계약상 언어의 우선순위를 정한 것이 아닌 한, 국문과 영문의 문구를 함께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한 사례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이처럼 국‧영문 병기 계약서 관할조항의 국문과 영문 내용이 다른 경우에는 분쟁의 본안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전에 관할에 대한 절차적 다툼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사전적으로 관할조항에 대한 확인과 검토를 통한 대비가 필요하겠으며, 이미 관할에 대한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는 계약 문구 및 제반 사정 등을 충분히 검토 및 고려한 해석을 통해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대법원은 계약서에 중재에 관한 조항을 포함시킨 것으로부터 (소송 등 법원 절차가 아닌) 중재에 의하여 분쟁을 해결하겠다는 당사자들의 의사를 추단할 수 있다고 보면서, 이 경우 재판절차(소송)를 분쟁해결수단에서 배제한다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사자들의 유효한 중재 의사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중재 의사는 중재조항의 일부 흠결 및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유효하게 인정된다는 점을 재확인 함으로써, 본건 판결은 중재 친화적인 관점에서 중재합의의 유효성을 폭넓게 인정해 오던 대법원의 기존 입장을 한층 더 발전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한국법상 관할조항(중재조항 포함)을 해석하게 되는 경우, 원칙적으로 국문 및/또는 영문 문구상 ‘Arbitration(중재)’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는지가 중재합의의 유효성 판단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국제거래에서 계약을 체결하는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법원의 경향 및 법리를 고려하여 관할 및 준거법 조항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거치는 것이 추후 분쟁 시 관할 및 준거법에 대한 다툼의 소지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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