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무부(Department of Justice; 이하 “DOJ”)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이하 “SEC”)는 그 동안 대리인 이론(“agency principles”)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Foreign Corrupt Practices Act (이하 “FCPA”) 관할권을 확장해왔습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FCPA의 반뇌물조항의 적용 대상이 되려면 아래 ①, ②, ③ 세 가지 요건 중 하나를 충족하여야 하는데, 이 중 ①과 ② 요건의 경우 미국 영토 내에서 위반행위가 있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회사의 경영진, 임직원, 대리인, 주주에게도 관할권이 확장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① |
미국 증시에 상장되거나 거래 증권을 발행한 회사(15 U.S.C. §78dd-1, “미국증권발행회사(Issuer)”) |
② |
미국인 또는 미국에 주된 사업장을 두고 있는 회사(15 U.S.C. §78dd-2) |
③ |
미국 영토 내에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부패행위에 관련된 외국인 또는 외국기업(15 U.S.C. §78dd-3) |
여기서 ‘대리인’에는 에이전트 또는 컨설턴트 등의 제3자 중개인(Third-party intermediary) 뿐만 아니라 자회사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즉 사실관계에 따라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는 경우 자회사는 모회사의 ‘대리인’으로 간주되어 FCPA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이때 모회사는 사용자책임의 법리(”doctrine of respondeat superior”)에 따라 대리인인 자회사의 위반행위로 인하여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본 사건은 대리인 법리 적용의 연장선상에 있는 문제로서, 모회사가 미국증권발행회사이거나 미국에 주된 사업장을 두고 있는 회사라면 그 대리인에 해당하는 자회사는 미국증권발행회사나 미국국내업체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FCPA 반뇌물조항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 준 사례입니다.
아래에서 해당 사건에 대하여 더 자세히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건 개요
모회사인 Grupo Aval Acciones y Valores S.A. (이하 “Grupo Aval”)와 자회사인 Corporación Financiera Colombiana S.A. (이하 “Corficolombiana”)는 2023. 8. 10. FCPA 위반으로 SEC 및 DOJ와 약 8,090 만 달러의 제재금 납부에 합의하였습니다.[1] Grupo Aval은 은행, 통신, 부동산 등을 포함한 다양한 금융 활동에 종사하는, 콜롬비아 보고타에 본사를 둔 지주 회사로 뉴욕 증권 거래소에 상장된 미국증권발행회사이며, 자회사로 콜롬비아 주요 은행 4개와 콜롬비아 최대 금융회사 중 하나인 Corficolombiana를 두고 있습니다.
Corficolombiana는 2009년부터 콜롬비아 정부에서 주도한 Ruta del Sol II 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수주하기 위하여 브라질 건설 대기업인 Odebrecht S.A.와 합작회사(“joint venture”)를 설립한 후 소수지분권자로 파트너십을 맺어 사업을 수주 및 시행 하였고, 이후 Corficolombiana의 경영진은 기존 계약 범위 보다 더 확장된 거리의 고속도로 건설 사업이 추가될 수 있도록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관련 콜롬비아 정부 공무원에게 약 2,800만 달러 상당의 뇌물을 지급하는 것에 동의 하고 이를 승인하였습니다. 당시 뇌물 공여는 콜롬비아 정부 공무원과 친분이 있는 중개인과 다수의 허위 계약을 체결하여 해당 계약 대금의 일부를 중개인이 콜롬비아 정부 공무원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추가 고속도로 확장 사업은 별도의 경쟁 입찰을 거치지 않고 기존 사업 범위를 변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Corficolombiana가 이득을 보게 되었습니다. Corficolombiana 임직원들은 뇌물 공여를 위하여 허위 계약서 및 인보이스를 활용하였고, 회계장부에 해당 내역을 허위로 기재하기도 하였습니다.
관할권 적용 및 제재 결과
SEC는 Grupo Aval에 FCPA 회계조항위반을, Corficolombiana에 FCPA 반뇌물조항위반을 각각 적용하여 총 4,030만 달러의 제재금을 부과하였습니다. 또한 DOJ는 Corficolombiana에 FCPA 반뇌물조항위반을 적용하여 3년 간의 기소유예합의를 체결하고 총 4,06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였습니다.
본 사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SEC와 DOJ 모두 자회사인 Corficolombiana에게 미국증권발행회사에게 적용되는 조항인 §78dd-1을 적용하였다는 것입니다. Corficolombiana가 미국증권발행회사가 아님에도 해당 조항을 적용한 근거는 Corficolombiana가 미국증권발행회사인 모회사 Grupo Aval의 대리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자회사 Corficolombiana를 모회사 Grupo Aval의 대리인으로 인정한 근거는, Corficolombiana의 자금 및 운영 결과가 Grupo Aval의 연결재무제표에 포함된다는 점, Grupo Aval의 임원이 Corficolombiana 이사회의 구성원으로 들어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시사점
FCPA 위반과 관련하여, 모회사가 자회사의 뇌물제공행위와 관련하여 책임을 지는 경우는, (1) 모회사가 해당 증뢰행위에 직접 관여하였거나, (2) 모회사가 자회사를 지배(control)하여 자회사가 모회사의 대리인으로 볼 수 있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모회사뿐만 아니라 위반행위를 한 자회사도 FCPA가 적용되어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설령 자회사가 미국증권발행회사나 미국국내업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모회사에 대하여 FCPA 관할권이 있다면 자회사 역시 FCPA 위반으로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SEC는 최근 10년 간 다수의 케이스에서 대리인 법리에 근거하여 모회사에 대해서는 제재를 하여 왔지만, 본 사건에서는 미국증권발행회사나 미국국내업체가 아닌 자회사 역시 미국증권발행회사인 모회사의 대리인으로 간주한 후, 자회사 및 모회사 모두 제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자회사가 대리인인지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모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지배(control)의 정도를 핵심 요소로 보는데, 여기에는 자회사의 행위에 대한 모회사의 인식 및 지시 여부, 모회사와 자회사 간의 형식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관계 및 거래 내용 등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검토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에도 모회사가 미국증권발행회사이거나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경우 자회사의 FCPA 위반 행위로 인하여 모회사와 자회사 모두 FCPA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FCPA 관할권 하에 있는 회사라면 자회사가 FCPA 관할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와 관계 없이 자회사의 FCPA 위반을 방지하기 위한 컴플라이언스 노력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1] SEC 제재 금액 총 4,030만 달러와 DOJ 벌금 총 4,060만 달러를 합친 금액. 단, DOJ는 회사가 콜롬비아 수사당국과 진행중인 항소를 포기하면 최대 2,030만 달러를 감액해 줄 것을 약속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