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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러시아 제재 관련 국제분쟁 이슈 개관

2022.04.28

최근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국제 사회는 러시아 주요 은행 및 국영기업과의 거래 제한, 푸틴 정권과 가까운 정·재계 인사의 자산동결, 러시아에 대한 수출통제 강화와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등 유례 없이 강력한 제재 조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또한 제재에 동참하는 국가들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하고 다양한 제재 대응 조치를 발표하며 맞서고 있습니다. 

불과 2개월만에 완전히 뒤바뀐 사업 환경 때문에 러시아 관련 거래와 프로젝트를 둘러싼 분쟁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바, 이하에서는 대 러시아 경제 제재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국제분쟁 이슈들을 상사중재와 투자중재, 그리고 법원 절차의 관점에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사중재와 관련한 고려사항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당시 국제 사회가 취한 대 러시아 제재 조치로 인하여 러시아 국민이나 기업이 외국에서 진행되는 중재나 소송 절차에 참여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발생하자, 러시아는 2020년 상사절차법(Arbitrazh Procedure Code) 개정을 통하여 관련 계약의 당사자가 분쟁을 러시아 법원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하였습니다. 

특히 신설된 규정은 외국의 러시아 제재와 관련하여 발생한 분쟁이면서 러시아 당사자가 관여하거나, 외국의 제재 대상자인 러시아 국민이나 기업이 분쟁의 당사자인 경우, 러시아 상사법원이 전속관할을 가지도록 정하고 있는데, 이 규정은 중재합의가 있는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재 대상자인 러시아 당사자가 외국의 제재로 인해 실제로 중재절차에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 어렵다는 사실까지 입증해야 하는지 여부를 두고 다툼이 있었으나, 러시아 대법원은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지 않더라도 관련 분쟁의 해결을 러시아 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외국의 대 러시아 제재 또는 제재 대상자가 관여하는 사건의 경우 유효한 중재합의가 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러시아 법원에 제소가 가능할 수 있으므로, 소송금지가처분 내지 중재금지가처분 절차를 포함한 국제중재와 러시아 국내 소송이 동시에 진행되고 서로 모순되는 중재판정과 판결이 내려지는 데에 따른 리스크에 대한 충분한 대비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투자중재와 관련한 고려사항

러시아는 60여 개국과 투자보장협정을 체결한 바 있으며, 한국 투자자와 러시아 정부 사이의 국제투자분쟁에 관하여는 1991년 발효된 대한민국 정부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정부간의 투자의 증진 및 상호보호에 관한 협정(이하 “한-러 BIT”)이 적용됩니다. 

현재 러시아가 국제 사회의 제재에 대응해 발표한 제재 대응 조치들을 살펴보면, 한-러 BIT에 위반된 것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는 조치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국환 거래나 러시아 내 자산 취득, 채무 상환 등에 있어 “비우호국” 기업이나 개인을 달리 취급하는 조치들의 경우, 대한민국 투자자를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우하며 비합리적이거나 차별적인 조치를 취하지 말아야할 의무(이하 “FET 의무”)를 규정한 한-러 BIT 제2조, 최혜국대우 및 내국민대우 관련 의무를 규정한 제3조, 투자 수익 등의 자유로운 송금을 허용하도록 한 제6조 등에 위반될 소지가 있습니다. 또한, 현재 러시아 연방의회에 계류 중인 외국계 기업에 대한 강제적인 관리 및 국유화 법안이 시행될 경우, 수용과 관련된 한-러 BIT 제5조는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집행 과정에서의 적법절차 위반이나 투명성 결여로 인한 제2조의 FET 의무 위반 또한 문제될 수 있을 것입니다. 

러시아는 제재 대응 조치들이 국제 사회의 제재로 인한 경제 붕괴 등을 막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되나, 최근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내린 잠정조치의 취지 등에 비추어 보면 중재판정부는 러시아가 이러한 조치들이 필요하게 된 상황을 자초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러시아의 책임을 인정할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사안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러시아는 이미 2014년 크림반도 합병 과정에서 다수의 우크라이나 기업으로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투자보장협정 위반에 따른 투자중재 제소를 당하여 일부 사건에서는 이미 패소한 바 있습니다. 

법원 소송 및 집행과 관련한 고려사항

러시아 상사절차법의 신설 규정은 외국의 대 러시아 제재 또는 제재 대상자가 관여하는 사건의 관할합의에도 적용될 수 있으므로, 제재 대상자인 러시아 기업으로서는 외국 법원에 대한 전속적 국제재판관할합의를 무시하고 러시아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법원이 외국 법원의 소송금지명령을 집행하는 경우가 드문 점 및 위 상사절차법의 개정 취지 등을 감안하면, 러시아 법원의 소송과 외국 법원의 소송이 병행하여 진행됨으로써 서로 상충되는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상당하며, 이 경우 판결의 승인, 집행 과정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중재판정의 집행에 있어서도 같은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러시아는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협약’의 가입국이고, 관련 법령상 요구되는 외국 중재판정 및 판결의 집행 요건이나 절차가 국제적으로 기대되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제 사회의 대 러시아 제재가 가지는 법적 효력에 관한 한 러시아 법원은 외국 법원이나 중재인들과는 다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시행 중인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의 불가항력성을 전제로 내려진 중재판정 또는 외국 법원의 판결로서 러시아 당사자에게 불리한 중재판정이나 판결은 이를 공서양속에 반하는 것으로 보아 집행을 거부할 것으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제재 대응 조치의 효력을 부정하는 중재판정이나 판결 또한 러시아 법원을 통한 집행이 거부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중재 및 소송에서 러시아 당사자를 대리하던 해외 로펌이 사임을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데, 해당 절차에서 결과적으로 러시아 당사자가 패소할 경우 이들을 위한 충분한 절차적 권리가 보장되었는지 여부 또한 다투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외국에서 러시아 당사자를 상대로 중재판정이나 판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도 여러가지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국내에서의 집행이 여의치 아니한 이상 러시아 당사자의 제한된 해외 자산에 대하여 여러 건의 경합하는 집행 시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자산 소재지 국가의 대 러시아 제재 조치로 인하여 러시아 당사자의 자산이 동결되어 집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후자의 예로, 미국과 EU의 제재를 받고 있는 베네수엘라 국영기업을 상대로 한 중재판정의 경우 집행 과정에서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점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기업들의 대응 방안 및 시사점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각국의 대 러시아 제재가 강화되면서, 러시아 역시 보다 강력한 제재 대응 조치를 계속 발표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따라서, 기업들로서는 러시아와 관련된 신규 계약을 체결하거나 투자를 함에 있어 적절한 계약상 보호장치와 출구 전략을 마련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하거나, 중재지를 러시아로 한 중재합의를 포함하는 것은 피하는 편이 안전하여 보입니다.

만약 진행 중인 러시아 관련 거래나 프로젝트에 이미 제재 리스크가 현실화된 경우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분쟁해결에 필요한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습니다.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할 경우에는 러시아 당사자의 선제 조치 때문에 계약상 권리를 효과적으로 행사할 기회를 상실하거나 실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특히 거래 상대방이 제재 대상자로 지정된 경우에는 거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이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한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사거나 평판 리스크를 부담하게 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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